없는 나를 살아가는 법
<리플리>
최수미(연극학과 연극학전공 예술사전공)
리플리 증후군은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 믿고 거짓된 말과 행동을 상습적으로 반복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뜻하는 용어로 미국 소설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리플리』(The Talented Mr. Ripley)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공식적인 의학용어는 아니지만, 성취 욕구가 강한 개인이 사회적인 구조나 현실에 부딪혀 이를 충족시킬 수 없을 때 발생하는 것으로 실제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김병수(2015, 8) 우리는 누구나 자신을 속이며 산다. 인물과 사상, 171-183.)
이러한 소재를 중심에 둔 뮤지컬 <리플리>는 한 대의 피아노와 두 명의 배우로 구성된 액자식 구조의 2인극으로, 이야기는 외화에서 내화로 흘러가다 다시 외화로 돌아온다. 외화는 우영이 미스터리한 존재인 한에게 자신의 내밀한 사연을 이야기하며 시작된다. 내화의 가장 큰 서사는 우영과 재이가 서로에게서 자신의 결핍을 보는 것으로 이어진다. 가난한 재이는 우영의 부를 시기하고, 우영은 재이의 문학적 재능을 질투한다. 두 사람은 친구가 되지만, 곧 재이의 전학으로 멀어진다. 하지만 둘은 서로를 찾아내겠다는 마음과 노력으로 기어코 재회하고, 두 사람은 서로의 갈망을 채워주는 존재가 되기로 하지만, 이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이 모든 이야기는 우영의 입을 통해 전해지지만, 작품의 마지막에 다다라 외화의 발화자가 사실은 우영이 아닌 재이임이 드러난다. 재이는 한과의 만남을 통해 우영의 삶이 아닌 자신의 삶을 되찾을 용기를 얻게 되고, 그렇게 재이의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관객의 감각으로 재현되는 리플리
극을 관통하는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소재는 핵심적인 연출 장치인 ‘배우의 전환’을 통해 무대 위에 구현된다. 우영을 죽인 후 ‘재이’는 이전 재이 역할의 배우가 아닌, ‘이전 우영 역할의 배우’가 맡아 연기한다. 다음과 같은 방식을 통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재이의 자아에 대한 믿음은 의심할 수 없을 만큼 완고하고 명백하다. 이러한 연출은 관객으로 하여금 리플리 증후군을 겪는 재이의 이야기를 단순히 지켜보는 데 그치지 않고, 재이의 거짓말에 직접 속아넘어가는 경험을 하게 만든다. 그는 타자의 삶을 매개로 자신의 결핍을 보상하지만, 결국 타인의 자아를 내면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한계에 봉착한다.
이 복잡한 전개는 음악의 힘으로 관객을 납득시킨다. 잃어버린 내면과 외면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재이의 심리는 빠른 템포의 음악으로 형상화된다. 특히, 라이브 피아노 한 대로만 구성된 음악은 배우들의 아슬아슬한 내면 연기를 극대화한다. 그리고, 그 사이를 넘나드는 클래식과 탱고 음악은 두 인물의 내적 갈등과 외적 갈등을 목격하는 관객들의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뮤지컬 <리플리>는 관객이 인물의 허구적 서사에 속아넘어가는 신선한 경험을 하게 한다. 이 신선한 경험을 통한 충격은 작품이 전달하는 주제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게 하지만, 단 한 번의 관람만으로는 서사를 완전히 이해하기에 어려움이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그 부족한 서사를 채우는 음악의 힘은 공연이 끝난 후에도 여운을 남긴다. 서사와 음악의 결합으로 완성된 <리플리>는 우리는 자신의 존재를 어떻게 있는 그대로 긍정할 수 있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으로 관객과 공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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