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게르니까>는 1937년 스페인 내전의 한복판, 폭격으로 무너진 노부부의 집 안으로 관객을 불러들인다. 극장에 들어선 관객이 마주하게 되는 것은 매끄러운 완전성과는 거리가 먼 공간이다. 곳곳이 무너져 조각 나 있고 파편화된 형태로 구성된 무대는 폭격으로 붕괴된 집의 내부가 된다. 폭격이 거듭되고 집이 점차 무너져 가는 상황에서, 아내는 화장실의 잔해에 깔려 몸을 움직일 수 없다. 이로 인해 생겨난 단절의 공포가 극 전반을 지배한다. 연출적으로는 두 배우의 신체가 점유하는 공간의 분리가 더해져 그 긴장감을 더욱 극대화한다. 아내 리라는 극장의 2층에, 남편 황슈는 1층 무대에 머무르며 서로에게 닿을 수 없다. 폭력이 훑고 간 자리에서 두 사람이 연결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대화이지만, 간헐적으로 울리는 비행기 엔진 소리와 폭격음이 예기치 못한 단절의 순간을 끼워 넣는다.
폭격이 지나간 자리
<게르니까>에서는 폭력 아래 놓인 개인의 무력함이 여실히 드러난다. 울음 섞인 리라의 호소에 황슈가 취해줄 수 있는 조치라고는 그녀에게 어떻게든 몸을 빼내어 보라고 다그치거나, 전쟁이 끝난 이후에 있을 이상적인 일들에 대해 늘어놓는 것이 전부이다. 그는 부인에게 희망과 용기를 건네듯 파란 풍선을 선물해 보기도 하지만, 외부에서 비집고 들어오는 폭력에 의해 손 쓸 새 없이 터져 버리고 만다.
은연중 관객의 신체와 시선 또한 외부의 폭력을 극대화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관객은 1층과 2층에 마련된 공간을 자유롭게 오가며 공연 공간을 직접 경험한다. 상황적인 제약에 묶인 배우들과 달리, 관객의 몸은 어떤 제약도 받지 않은 채 이동한다. 이때 관객의 이동 경로는 단순히 층간의 경계를 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때로는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인 집안을 표상하는 동시에, 전통적으로 배우의 영역이었던 무대가 관객에 의해 침범당하기도 한다. 가령 배우가 앉아 대사를 이어가야 하는 소파에 관객이 함께 걸터앉음으로써 안락해야 할 개인적 공간에 이질감이 더해진다. 한창 대사를 진행하는 배우의 바로 옆 의자에 앉아 있는 관객의 모습이 눈에 띄기도 한다. 이렇듯 공연 내내 관객의 동선을 자유롭게 함으로써 객석이 아닌 무대 위에 관객이 존재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배우의 연기가 언제든 침입당할 수 있다는 불안이 생성된다. 불규칙한 이동의 리듬에서 비롯된 크고 작은 침범들이 모이며, 관객은 단순한 관람자가 아니라 또 다른 위협과 침입의 형상으로 자리한다.

관객의 자리는 어디인가
다만, 의도와 별개로 관객을 폭력과 위협의 주체에 두려는 연출이 효과적으로 감각되었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이는 누군가가 임의로 설치한 카메라가 포착한 리라의 모습을 스크린에 투사함으로써 관객이 제3자의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보게 만드는 장치에서 비롯된다. 이미 ‘보는 자’로 위치 지워진 관객은 그녀의 고통에 직접 개입하기보다는, 거리를 두고 관찰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인식된다. 더불어 공연 중간마다 예기치 않게 리듬을 끊는 폭격음과 비행기 엔진 소리는 관객에게도 긴장과 공포로 다가온다. 관객은 폭력을 휘두르는 주체라기보다는 연극 속 노부부와 다를 바 없이 극장 전체를 압도하는 폭력에 노출된 존재가 된다. 결국, 관객에게 남는 것은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의 감각이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유령적 방관자의 경험이다.
무수한 폭격음이 잦아든 뒤, 테이블 위에는 힘없이 늘어진 리라의 몸만이 남는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황슈와 리라는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춘다. 두 사람은 오로지 서로의 에너지에만 집중한 채 춤을 이어가더니 이내 사라진다. 커튼콜도 없이 황슈와 리라가 떠나가고, 극장 곳곳에는 관객이라는 유령들이 부유하듯 머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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