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으로 빚어낸 따뜻한 소시민의 초상
2026-1 예술사 스튜디오 공연 <굿닥터>
송승용 (연극학과 연극학전공 전문사과정)
연극 <굿 닥터>는 한 작가의 서재에서 시작된다. 작가는 무대 중앙을 가득 채우는 거대한 책상 한편에 앉아서 글을 쓰고 있다. 무언가 골똘히 고민하던 그는, 이내 책상 양옆에 위치한 객석을 의식하고 관객들에게 말을 건네기 시작한다. 그는 극작가로서 느끼는 세상과 고뇌, 작품을 창작하는 것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는다. 작가는 자신의 강박과 열등감을 고백하면서 훗날 자신의 묘비에 적힐 내용을 상상하며 이야기하는데, 이 대목에 이르러서야 무대 위의 작가가 ‘안톤 체홉’임이 밝혀진다. 체홉은 작가이기 이전에 자신이 원래 하고 싶었던 일에 대해 말하려다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며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그렇게 그의 단편들이 무대이자 곧 그의 책상 위에서 살아 숨 쉬기 시작한다.
미워할 수 없는 이들
작가는 평범한 소시민의 다양한 일상을 무대 위로 불러낸다. 그는 극장에서 장관에게 재채기를 하여 사색이 된 말단 직원부터, 여주인에게 온갖 트집을 잡혀 정당한 보수를 받지 못할 뻔한 가정교사, 사제의 치아를 온갖 방법으로 뽑으려는 면허 없는 치과 조수, 늦은 나이에 다시금 행복을 꿈꾸는 노년의 남녀, 남편이 있는 여인을 유혹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남자, 돈을 벌기 위해 물에 빠지는 시늉을 하는 건달, 오디션을 보기 위해 멀리 오데사에서 온 소녀, 학교에서 퇴직금을 받지 못한 남편을 대신해 은행에서 돈을 달라고 우기는 여인, 아들의 생일 선물로 첫 경험을 선물하려다 주저하는 아버지까지의 이야기를 무대에 펼쳐낸다.
이들이 처한 상황과 모습은 터무니없거나 우스꽝스럽지만 어딘가 애잔함이 느껴진다. 작가는 인물들을 평면적인 선과 악으로 나누지 않는다. 조금 삐뚤어진 방식이지만 가정교사에게 세상을 가르치려 했던 여주인, 은행에서 떼를 쓰던 부인, 그리고 이를 쫓아내려는 지배인 모두 각자 지켜야 할 삶과 행동에 대한 각자만의 입장이 있다. 도덕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한 친구의 아내를 유혹하던 피터마저도 최후에는 그녀를 선택하는 대담함을 보이지 못하며, 마음을 고치고 살아간다는 결말을 맞는다. 결국 이 단편들의 이면에는 불완전한 인간 내면에 대한 통찰과 삶의 애환이 자리 잡고 있다. 작가는 이 지점들을 날카롭게 꿰뚫어 보면서도 계속되어야 할 삶에 대한 긍정을 드러내면서, 삶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인간 군상을 애틋하게 끌어안고 있다.
웃음에 가려진 시선, 그럼에도 남는 위로
<굿 닥터>는 극의 초반부터 막이 내리기까지 일관적으로 희극적인 분위기를 유지한다. 이러한 희극적인 톤을 만들어 내기 위해 배우들은 전반적으로 캐릭터성이 돋보이는 과장된 연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과장된 화술과 간간이 사용되는 슬랩스틱은 웃음을 유발하고 유쾌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특히 옴니버스 형식 속 각각의 단편들이 빠르게 전환되는 가운데, 배우들은 무대 한편에서 의상을 갈아입으며 매끄럽게 배역을 전환한다. 이 의도적으로 노출된 장치는 배우들의 능숙한 테크닉과 맞물리며 시각적 유희를 극대화한다. 또한 재채기에서 침이 튀는 듯한 조명이나, 은행 지배인이 발의 통증을 느낄 때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그의 위로 떨어지는 식 등의 조명은 배우들의 연기에 적재적소에 개입하며 만화적인 상상력을 이끌어낸다. 이렇듯 극의 구조와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이에 밀착된 조명은 시너지를 일으키며 희극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하지만 이러한 희극적 톤이 극 전반을 관통하도록 일관되게 유지하는 연출은 극 후반부로 갈수록 아쉬움을 남긴다. 인물들이 처한 상황의 진실이나 이면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코미디적 요소에 집중하다 보니, 극 전반의 템포와 호흡이 다소 일률적으로 흘러간다. 이로 인해 극 초반부에 느꼈던 신선한 자극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반복적이고 익숙한 패턴으로 다가오면서 피로감을 유발한다. 무엇보다 각각의 단편이 가지고 있는 삶의 애환과 사회적 부조리라는 메시지가 웃음에 가려 다소 옅어지는 점은 못내 아쉽다.
그럼에도 극장을 채우는 이 웃음이 가진 힘이 헛되지 않음은 분명하다. 불완전하고 결함 많은 우리 인간들을 껴안으려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과 애정이 이 웃음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비록 단편들 이면의 무게감은 덜어졌으나 주어진 삶 속에서 ‘행복과 만족을 느끼는 일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극 중 작가의 마지막 대사처럼, 우리네 삶을 기꺼이 긍정하고 위로하는 다정한 온기는 객석에 오래도록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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