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격의 윤리를 묻다 <게르니까>

  • 작성자 하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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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의 윤리를 묻다
<게르니까>

인유빈(연극학과 연극학전공 예술사과정)

연극 <게르니까>는 1937년 4월 26일 스페인 내전 중 나치 독일군이 바스크 지방의 게르니카를 무차별 폭격한 비극적인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 부조리극이다. 이 사건은 이후 민간인 학살을 상징하는 보편적 기호가 자리 잡았으며, 이 소식을 접한 파블로 피카소는 《게르니카》(1937)를 제작하여 예술이 폭력에 맞서는 저항과 증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페르난도 아라발의 희곡 《게르니까》(1959)는 이 역사적 사실에서 출발하며 참혹함을 직접 재현하기보다 폭격으로 무너진 집에 갇힌 노부부 황슈와 리라의 일상적인 대화와 아이러니를 통해 인간의 무력감과 전쟁의 부조리를 폭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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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비극의 공적 소비와 관객의 역할

이번 공연은 원작이 다루는 폭력의 사적 공간 침범이라는 핵심 주제를 극장 공간과 관객의 신체적 체험으로 전환하는 무대 실험을 혁신적으로 시도했다. 연출은 이 공연을 단순한 서사적 몰입 보다 아닌 극장 안의 전시라는 감각을 전면에 내세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지하 1층 실험무대 안에서 무대는 하나의 집이 아니라 흩어지고 재배치된 조각들로 구성되어 파편적으로 배치된다. 관객은 고정된 지점에 머무르지 않고 실험무대 1층과 2층을 자유롭게 이동하며, 각기 다른 시선과 거리감으로 장면을 마주하도록 초대된다. 이로써 관객의 위치 자체가 곧 침범의 방식이자 상징이 된다. 
김경은 드라마투르그에 따르면, 이번 공연은 사적 비극이 공적으로 확장되어 해석되고, 소비되는 메커니즘을 보이는 것에 집중한다. 이 메커니즘은 시야(View), 거리(Proximity), 기록(Record)이라는 세 갈래로 분석할 수 있다. 먼저 ‘시야’는 1층은 근경의 파편적 신체를, 2층은 피카소의 그림처럼 도상학적 원경을 제공하도록 분할되어, 관객 스스로가 해석을 유도한다. 이러한 거리의 단계화는 테이블, 창문, 잔해 더미 같은 지형적 레이어를 통해 계획되어 표현되며, 잔해 더미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축적되어 공간을 좁힌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핵심적인 장치는 ‘기록’의 개입이다. 텍스트, 영상, 사운드가 무대에 병치되어 사적인 감정을 공적인 표기에 종속시킨다. 특히 황슈가 리라에게 건넨 풍선은 희망과 위로의 제스처이지만, 곧 폭격에 파열되면서 보호가 파괴로 전환되는 양면성을 관객에게 직접 체험하게 한다. 또한 작품 속 ‘작가’와 ‘기자’의 역할은 관객에게 이양되고, 군모를 쓴 관객이 장교의 시선처럼 권력자의 시선을 강화하함으로써, 관객은 비극을 기록하고 소비하는 주체로 위치지어진다. 공연 전 관객 중 일부에게 군모를 나누어준 뒤 공연 과정에서 그들에게 장교의 역할을 이양시킨다는 것은 연출의 의도였다. 그 의도는 신선하였으나, 공연 과정에서 관객이 모자를 벗는 등의 행위가 시선 분산으로 이어지지 못하여 장교의 인식이 쉽지 않았다는 점은 공연의 변수이자 아쉬운 점이기도 했다. 

연출진은 폭력의 선정성 대신, 전쟁 수혜자(장교)의 일상성을 제시하여 악의 평범성을 설정하고, 관객의 도덕적 포지션을 미세하게 흔들었다. 관객이 영상을 통해 리라가 화장실에 갇힌 모습을 보거나, 텍스트가 배우의 대사를 덮는 순간, 관객은 ‘나는 지금 누구의 눈으로 리라를 보고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된다. 결론적으로, 연극 <게르니카>는 단순히 '전쟁은 나쁘다'는 선언 대신 '보는 행위의 윤리'를 관객 각자의 몸에 되돌려 놓으려는 시도다. 공연은 파편화된 장면과 소리, 이미지 그리고 관객의 동선과 선택이 하나의 경험을 이루도록 설계함으로써, 관객 스스로 자신의 시선과 감각을 의식하게 만들고, 전쟁이라는 참사를 바라보고 소비하는 우리의 방식 자체에 대해 새롭게 질문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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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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