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같이 '가는' 사람 - 연출가 민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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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원(연극학과 전문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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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 앞에 어떤 수식어를 붙여야 할까. 공연배달서비스 ‘간다’ 대표 민준호, 연출 민준호, 작가 민준호, 배우 민준호. 붙일 수 있는 수식어가 너무나 많다. 이번 지면에서는 그의 이름 앞에 ‘같이 ‘가는’ 사람’이라는 말을 붙이고 싶다. 극단 이름 ‘간다’처럼 그가 지금까지 달려올 수 있었던 데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같이 ‘갈’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이고, 그들과 함께 세상에 나아‘갔으며’, 앞으로도 공연을 만들어 ‘가고’ 싶은 마음이 함께 인터뷰 내내 느껴졌기 때문이다.

Q. 학생 시절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에 들어온 과정부터, 학교에 다니면서 있었던 에피소드가 궁금합니다.


  저는 원래 단국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시나리오 작가가 되려고 입학했어요. 그런데 연기에 흥미를 느껴 연기 교육을 더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었고, 그러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을 알게 되었죠. 마침 군 면제를 받은 시점이라 3학년 때 연극원 시험을 봤고, 운 좋게 붙어서 1학년부터 다시 시작하게 됐습니다.

  연극원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진선규와의 만남이에요. 선규는 96학번인데, 처음에는 “말 놓으라”고 자꾸 얘기했지만, 군기가 남아 있던 저는 한 달 정도 버티다가 결국 친구가 됐습니다. 이후로는 늘 붙어 다니며 학교생활을 했어요. 특히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기계체조와 아크로바틱을 연습했는데, 그 경험 덕분에 몸을 쓰는 데 익숙해졌습니다.

  어느 날 보이스 수업에서 시장 소리를 관찰해 목소리로 재현하는 과제가 있었는데, 심심하다고 선규랑 친구들 몇 명과 스토리를 만들어 발표했어요. 우리가 만든 40분짜리 <혹부리 영감> 발표는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고, “이걸 공연으로 만들어 보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이 경험이 나중에 <거울공주 평강이야기>를 만들게 된 계기가 되었어요.

이 작품은 목소리와 움직임만으로 공연을 만드는 데 집중했고, 이를 위해 뉴욕에 가서 춤과 움직임을 배우기도 했어요. 덕분에 무용원 안무과에도 들어가게 되었고, 이후 이 공연은 여러 곳에서 초청받아 공연되며 자연스럽게 극단의 기반이 마련됐습니다.

  학교생활은 늘 무언가를 만들고 실험하는 과정이었어요. 선규와의 경쟁과 협력이 큰 동력이 되었고, 무용원에서 만난 김설진과도 함께 작업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했습니다. 특히 선생님과 동료들의 도움 덕분에 다양한 작업을 이어갈 수 있었죠. 학교생활에서 얻은 모든 경험이 현재의 저를 있게 한 중요한 기반이 된 것 같아요.



Q. 그때 당시 학교 분위기가 과에 상관없이 모든 걸 할 수 있는 분위기였나요?


  네, 당시 학교 분위기는 지금과 많이 달랐습니다. 각 과가 협력하고 교차 수업을 듣는 일이 자연스러웠죠. 연출과가 연기하고, 연기과가 연출하며 서로 다양한 경험을 쌓았습니다. 예를 들어, 김우옥 원장님이 진행하셨던 ‘연극 세계로의 여행’ 같은 수업에서는 모든 과가 모여 연극에 대해 고민했어요. 이런 분위기 덕분에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며 창작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우리는 과에 상관없이 ‘멀티’로 작업하는 게 당연했습니다. 저도 연기과였지만 글도 쓰고 연출도 하며 배우로도 활동했죠. 그 시너지가 극대화된 게 2004년 졸업 시즌이었습니다. 유정 누나가 <김종욱 찾기>와 <오! 당신이 잠든 사이>, 민주 누나가 <빨래>, 저는 <거울공주 평강이야기>를 4개월 만에 내놓았습니다. 저 역시 그 시기에 3개 작품에 참여하며 <오! 당신이 잠든 사이>와 <빨래>의 안무 겸 배우로도 참여했고, 극단 배우들도 서로 작품에 품앗이하듯 협력했죠.

  이런 방식은 창작에 큰 도움이 되었어요.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함께 성장했죠. 그런데 요즘은 과 간의 교류가 줄고 분리된 면이 있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습니다. 분업화된 환경이 완성된 작품을 만들 때는 효율적이지만, 창작 과정에서는 오히려 창의성을 제한할 수 있거든요. 당시 우리에게는 자유로운 협업과 경계 없는 도전이 창작의 자양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Q. 같이 작업했던 분들은 주로 어디에서 만났나요?


  <거울공주 평강 이야기>를 만들 때 함께 작업했던 사람들 중에는 학교 바깥에서 만난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당시 다음 카페가 유행이었는데, 제가 운영하던 ‘매트에 붙어라’라는 카페를 통해 아크로바틱을 배우러 온 사람들이었죠. 그들에게 체조를 가르치며 자연스럽게 친해졌습니다.

  이희준, 김민재도 그중 일부였어요. 처음엔 체조 학생으로 만났지만, 그들이 연극과 학교에 대한 꿈을 키워 결국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했고, 졸업 후 다시 극단 작업에 합류했죠. 결과적으로 학교보다 먼저 체조를 통해 맺어진 인연들이 작업의 큰 원동력이 되었던 셈입니다.



Q. 창작 집단 독과 함께 한 <내 마음의 안나푸르나>와 같은 ‘사실적으로 간다! 시리즈’로 리얼리즘 연극을 추구했었는데, 그런 창작과정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나요?


  <거울공주 평강 이야기>로 큰 성공을 거둔 뒤, CJ의 투자까지 받으며 배우들이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안정적인 환경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당시 젊었던 배우들은 안정보다 새로운 도전을 원했습니다. “더 많은 말을 하고 싶다”는 배우들의 열망에 따라, 창작 집단 독과 함께 리얼리즘 연극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 자식 사랑했네>, <내 마음의 안나푸르나>, <우리 노래방에 가서... 얘기 좀 할까?> 같은 작품들이 탄생했습니다.

  배우들이 대사를 통해 이야기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도록 초점을 맞추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실주의적 접근으로 흘러갔죠. 배우들은 극단에서 월급 30만 원을 받는 상황으로 돌아갔지만, 모두 이를 고생으로 여기지 않고 연기에만 몰두했습니다. 집이 없는 배우들을 위해 숙소를 마련하고, 식당에서 언제든 식사를 해결할 수 있게 해주며 연기 중심의 환경을 유지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 노래방에서 가서... 얘기 좀 할까?> 같은 작품이 주목받아 배우들이 영화와 방송에 대거 캐스팅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배우들의 외부 활동이 늘어나면서 극단 활동은 자연스레 중단되었고, 저도 개인적으로 7~8년 동안 극단에만 전념하다 보니 외부 작업을 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2년간의 휴식 후, 다시 프로젝트 형식으로 극단을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단원제로 묶기보다는 배우들이 외부 활동을 자유롭게 하면서도 극단에서 함께 작업할 수 있는 구조를 선택했습니다. 배우들은 바쁜 일정 중에도 참여해 주었고, 덕분에 극단이 지속될 수 있었습니다. 기획팀을 중심으로 운영하며 배우들의 유연한 참여가 이루어지는 방식이, 지금까지 극단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비정형적이지만 끈끈한 구조 덕분에 극단이 꾸준히 창작 작업을 이어가며 관객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습니다.



Q. ‘연극’의 어떤 점이 좋으셨나요? 왜 ‘연극’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솔직히 저는 연극을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연극영화과에 입학했을 때도 연극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고, 사실 처음엔 게임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자연스럽게 흘러온 거죠. 연극 자체보다는 ‘함께 있는 것’이 좋았던 것 같아요.

  연극을 조금씩 접하면서 느낀 건, 우리나라 연극이 획일적이고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점이었어요. 미국 유학 시절에도 여러 공연을 봤지만, 한국 연극은 왜색이 짙거나 데이트 연극, 번역극 위주로 한정적인 모습이 많아 보였어요. 그래서 ‘이왕 연극을 한다면 ‘무대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맛’을 내보자’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게 창작 집단 ‘간다’를 만들게 된 계기였어요.

저는 ‘연기 라이브로 보는 재미’ 같은 말이 너무 싫었어요. 그건 너무 기본적인 거잖아요. 영화가 이미 그런 부분을 대체했으니, 연극은 무대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맛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우리 노래방에서 가서... 얘기 좀 할까?> 같은 작품에서는 놀이터 세트를 만들고, 움직임을 활용하며 무대만의 색다른 재미를 시도했어요. 리얼리즘 연극을 할 때도 단순히 사실적으로 연기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요소를 더하려고 노력했죠.

  리얼리즘은 어떤 면에서는 가장 쉬운 작업일 수도 있습니다. 배우들이 연기에만 집중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저는 연극이 꼭 한 가지 스타일로 정의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나와 할아버지>, <그때도 오늘> 같은 작품은 리얼리즘의 틀 안에서 작업했지만, 동시에 저는 늘 다른 시도를 고민하고 있어요.

  대학로의 공연들이 비슷한 느낌이었어서, 저는 ‘간다’를 통해 조금이라도 다른 색깔을 내고 싶어요. 억지로라도 무대에서만 가능한 실험적인 시도를 하고, 관객들에게 다양한 공연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창작 무용이나 새로운 표현 방식에 대한 레퍼런스로의 관심도 이런 맥락에서 이어지고 있고요. 연극은 단순히 연기를 보여주는 것 이상의 공간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런 노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Q. 리얼리즘 연극을 하더라도 ‘무대에서의 맛’을 보여주려면 무엇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무대에서만 볼 수 있는 맛’을 어떻게 만들어내시나요?


  리얼리즘 연극에서도 ‘무대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맛’을 보여주기 위해 움직임은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연기만 보는 작품은 다른 곳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요. 연기과를 나와 수백 명의 배우를 봐왔기 때문에 연기 지도는 비교적 익숙한 일이지만, 무대에서 움직임과 연기를 함께 접목하는 작업은 훨씬 까다롭습니다.

  배우들을 설득하고 훈련하며 움직임을 더하는 과정은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제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냐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안무과와 창작과를 졸업한 설진, 세인 같은 동료들과 함께 움직임을 접목한 작품을 만들어가는 등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간다’의 색깔은 무대에서만 볼 수 있는 특유의 에너지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리얼리즘을 추구할 때, 영화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무대에서 오직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그 맛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예를 들어, 영화에서는 긴 테이크와 풀 샷을 통해 감동을 주지만, 무대에서는 그걸 라이브로 보여주기 위해 배우들 간의 끊김 없는 연기를 펼칩니다. 이 과정에서 배우들은 영화를 찍을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즉 현장에서 바로 그 순간의 연기를 보여주는 특별한 맛을 경험하죠.

  이런 방식은 실제로 영화배우들에게도 자극이 되기도 합니다. ‘한 시간 동안 진짜로 하는 연기를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며, 무대에서만 가능한 쇼를 만듭니다. 예를 들어, <신인류의 100분 토론> 같은 작품에서는 대사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극한의 에너지를 보여줍니다. ‘간다’의 작품은 이러한 극한을 추구하며 무대에서만 가능한 ‘맛’을 찾으려 합니다.

리얼리즘의 한계를 넘어서서, 연기의 깊이나 에너지를 중요한 요소로 삼습니다. 연기 자체가 ‘리얼리즘’을 넘어서지 않으면 진짜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죠. ‘리얼리즘 개나 줘버려’라고 말할 정도로, 배우들이 그냥 연기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넘어서서, 무대에서 보여주는 진실된 에너지와 싸우는 방식으로 작품을 끌고 갑니다. 이 에너지는 무대의 특성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방식입니다.

  결국, ‘간다’의 색깔은 다른 공연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극단적이고, 때로는 비현실적인 방식으로 무대의 에너지를 극대화하는 데 있습니다. 이를 통해 관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죠.



Q. 요새 숏폼, OTT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예술들을 접할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그런 시대에서 연극이나 공연이 계속 롱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롱런은 제가 책임질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다만, 돈에 대한 기대 없이 작업하면서도 관객이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하려 하고, 스스로만 예술을 한다는 느낌은 지양하려 합니다. 20주년을 맞게 될 줄 몰랐던 것처럼,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는 마음으로 욕심 없이 작업해 왔습니다. 결국, 공연에서만 느낄 수 있는 다른 형식과 무대의 맛을 꾸준히 탐구하는 것이 저의 역할인 것 같습니다. 실패가 두렵지만, 늘 “그래도 하자”라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오래 함께한 동료들도 독특하고 새로운 시도를 좋아합니다. 외부에서는 주로 리얼리즘 연기를 하다가도, 여기 와서 색다른 작업을 할 때 큰 즐거움을 느낍니다. 그들의 신뢰 덕분에 계속 도전할 수 있죠.

  롱런의 비결을 묻는다면, 정확한 정답은 없다고 봅니다. 다양한 요소들이 섞여야 하고, 삶의 조건에 따라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배우가 적은 소극장 공연인 <그때도 오늘>은 경제적 현실을 고려해 만든 작품입니다. 하지만 스타 캐스팅이나 실험적인 작업을 동시에 시도하며 밸런스를 맞추려 노력합니다.

  중요한 건 관객에게 “다른 방식으로 보는 재미”를 남기는 것입니다. 영화가 주는 익숙함에 길들여지지 않도록, 무대만이 줄 수 있는 감각적인 경험을 탐구합니다. 움직임, 노래, 춤 같은 요소들은 직관적인 감동을 전할 수 있기에 여전히 희망이 있다고 느낍니다. 이런 본능적 믿음으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Q. 같은 작품을 관객마다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른 것 같습니다. 연출님께서 의도한 바와 다르게 관객들이 받아들인 경우가 있었을까요? 이런 반응들을 마주할 때 어떻게 대응하시나요?


  작품을 관객마다 다르게 받아들이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연출로서 의도와 다른 해석이 나올 때도 있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꽃, 별이 지나>는 <사랑의 형태>의 발전형인데, 이 작품에서 우울증이나 상실의 아픔을 애도하지 못한 분들에게 작은 위로와 자연스러운 깨달음을 주고 싶었어요. 이를 위해 많은 공부를 하고 작품에 녹였죠.

  하지만 어떤 관객에게는 그런 주제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고, 반대로 어떤 분들에게는 예상치 못한 치유를 제공할 수도 있더라고요. 어떤 나이 든 작가분은 그동안 공부로도 해결되지 않던 상처를 작품을 통해 치유했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런 반응을 들으면, 누군가에게 필요한 공연이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느낍니다.

  물론,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어요. 누군가는 싫어할 수도 있겠지만,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려 합니다. 공연을 통해 행복만을 전달하거나, 모든 관객의 선입견을 바꿀 수는 없잖아요. 블록버스터 영화만 보는 사람이 있고, 아트하우스 영화를 선호하는 사람도 있듯이요. 공연도 그저 각자의 필요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제 작품이 누군가에게 쓸모가 있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좋은 일입니다. 이제는 관객의 반응에 대해 과하게 연연하거나 아등바등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봤어?” 하고 넘어가는 정도죠. 제가 흔들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Q. 동료들이랑 좋은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저는 동료들과의 관계가 단순한 희생이 아닌, 제가 진심으로 좋아해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 일을 보고 희생이라고 느낄 수 있겠지만, 저는 그 자체를 즐깁니다. 저는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 경제적인 걱정 없이 작업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제 부모님 덕분에 극단 동료들까지 저희 집에서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고, 제 작업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이 덕분에 경제적 욕심이 크지 않게 되었고, 극단 운영이 어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충분히 수입을 얻을 수 있지만, 여전히 공연을 통해 얻는 기쁨과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사실, 연극 관련 작업에서의 수입만으로도 살 수는 있지만, 동료들과 함께하는 창작이 너무 즐거워서 그것을 놓을 수 없어요. 제 부모님은 여전히 저에게 “왜 그렇게 돈을 못 벌고 있느냐”고 걱정하시지만, 저는 작가료와 연출료를 통해 충분히 받고 있고, 일하는 만큼 보상을 받고 있습니다.



Q. 재학 중 슬럼프를 겪는 친구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학교 재학 중에 슬럼프를 겪어본 적 있으신가요? 있다면 어떻게 헤쳐나가셨나요? 아니면 그런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에게 해주실 말씀 부탁드립니다.


  학교생활에서 슬럼프, 저는 없었어요. 그저 공부에 바빠서, 계속 움직이고 해야 할 일이 많았어요. 고민할 시간이 없었죠. 그런데 가끔 고민을 하는 친구들이 많다는 얘기를 듣는데, 그게 조금 안타깝더라고요. ‘앞으로 어떻게 할까? 뭐 해야 하지?’ 이런 고민은 결국 일어날 일이기 때문에 너무 깊이 생각해도 소용없다고 느껴요. 중요한 건 고민을 줄이고, 그 대신 행동에 옮기는 거예요. 고민이 많아져도 결국 뭐가 현명한지 알아내는 게 중요하죠. 저는 명상을 추천하고 싶어요. 마음속에서 쓸데없이 돌아다니는 불안, 예를 들면 '인사이드 아웃'에서의 불안 같은 감정이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는 상황을 바라보면, 그 시간들이 사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또, 과거에 대한 후회도 많죠. 하지만 중요한 건,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할 때 재미있는지 자신에게 묻는 거예요. 그리고 그런 걸 하다 보면 알바나 다른 일들이 방해가 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막혀서 가만히 있지 말고, 고민하면서 재미있는 걸 하라는 거예요. 이게 우울증에도 좋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운동을 하면서 고민하는 것과, 그냥 앉아서 고민만 하는 것은 완전히 달라요. 하루에 10시간은 움직이고, 2시간만 고민해보세요. 고민만 하며 살면 결국 몇 년 후엔 아무것도 남지 않아요. 하지만 어떤 일이든 간에 그걸 해 놓으면 나중에 무엇이든 도움이 됩니다.

  저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었어요. 글 공부도 남았고, 기계 체조와 운동도 나중에 무용을 하는 데 도움이 됐고, 연기과에서 배운 것도 연출을 하는데에도 도움이 됐어요. ‘연기를 배웠는데 그게 아깝지 않냐?’는 질문을 받았지만, 연기를 배운 것이 나중의 제 스타일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죠. 그때는 그게 어떻게 조합될지 몰랐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 경험들이 모두 연결된다는 걸 알게 됐어요.

  하루 24시간 중, 자는 시간 8시간만 제외하고 나머지 시간은 거의 뭐든지 할 수 있어요. 시간을 아껴서 무엇이든 해보세요. 그리고 조금만 고민해도 돼요. 하루에 20분만 고민해도 충분해요. 고민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도 아무것도 남지 않아요. 그래서, 일단 움직여보세요. 기타를 치든, 필라테스를 하든, 달리기를 하면서 고민해보세요. 그렇게 해야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어요. 무엇이든 하면서 고민을 줄이고, 찾는 게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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