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현(연극학과 전문사과정)

배우 이주영은 연극 무대 위에서 ‘숨’ 쉬는 순간들을 특별하게 여긴다. 배우와 관객이 같은 공간에서 서로의 존재를 느끼며 함께 호흡하는 시간, 그 순간이야말로 연극이 지닌 진정한 가치라고 그는 믿는다. 그의 무대는 단순히 하나의 공연으로 끝나지 않는다. 공연을 본 관객들은 그가 전한 에너지가 ‘불’처럼 가슴속에 타오르며 다른 공연과 삶 속으로 전해진다고 말한다. 이주영은 연극이 현대 사회에서 무용하게 여겨질지라도, 그 안에 아름다움과 의미가 깃들어 있음을 알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인간에 대한 긍정, 삶에 대한 긍정에서 비롯된 신념일 것이다. 이를 전제로 이주영이 ‘숨’ 쉬어왔고 앞으로도 ‘숨’ 쉴 순간들을 알아보았다.
Q. 올해 4월에 배우님이 출연하셨던 서울시극단의 <욘>을 봤습니다. 그 이후로 어떻게 지내셨나요?
올해 초,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헨릭 입센의 <욘 가브리엘 보르크만>이라는 작품을 <욘>으로 각색하고 고선웅이 연출한 작품에 참여했습니다. 그 작품이 끝난 다음엔 작년에 찍었던 강유가람 감독의 영화 <럭키, 아파트>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을 하게 되어, 전주를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쉬다가 넷플릭스에서 개봉 예정인 연상호 감독의 영화 <계시록>을 찍었습니다. 현재는 지니TV와 ENA에서 12월에 방영될 <나미브>라는 드라마를 찍고 있어요.
그리고 곧 8월에 각 나라에 흩어져 있는 연극원 1기 동기 친구와 언니들이 있는 유럽 여행을 1기들과 함께 가요. 의도한 건 아니지만 10년 만에 다시 파리를 갑니다. 곁가지로 얘기하자면 2014년도는 저에게 뜻 깊은 해였어요. 그 해에 최준호 교수님이 연출하신 <고백>이라는 작품으로 파리 태양극장에서 공연을 했고 바로 아비뇽 오프(Avignon off) 참가로 데 알 극장(Théâtre des halles)에서 한 달간 공연을 했거든요. 또 도쿄예술극장과 명동예술극장 국제공동제작 노다 히데키 연출의 <반신>이라는 작품으로 도쿄도 방문했었고, 연극 <피의 결혼>으로 이베로 아메리카노국제연극제(Ibero-Americano Theatre Festival of Bogota)에 초청되어 공연을 했구요. 10년이라는 주기가 변화의 시기라고 하잖아요. 희한하게 2014년부터 10년 동안 좋은 일들이 쌓여 왔던 거 같아요. 2024년 이렇게 또 즐거이 살아지는 동안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기대가 되는 요즈음입니다.
Q.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배우님이 그간 연기하셨던 작품들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혜화동 일번지에서 실험적인 작품도 하셨던데 어떤 작품들에서 어떤 인물들을 연기해 오셨는지 간략하게 어떤 소개해 주세요.
학교 졸업한 해에는 조금 막막했어요. 학교생활 중 다양한 연기적 자산을 공부하고 재미지게 보냈는데 어떤 작업을 해야 할지 막연했던 거죠. 마침 유명한 희곡으로 공연하는 작품 오디션이 있어서 공개 오디션을 봤어요. 그 작품에선 선택 받지 못했는데 단체 공개 오디션 중 저를 눈여겨봤던 연출님이 연락을 하셨어요. 아방가르드한 작품을 하시는 유명하신 행위예술가 분이셨는데 덜컥 겁이 나서 초대 원장님이셨던 김우옥 교수님께 전화를 드렸어요. “네가 그걸 하기에는 어렵지 않겠니”라고 하셔서 제가 그 작품은 거절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후 <오월의 신부> 연극원, 무용원 졸업 재학생 함께한 <이병복의 옷굿,살>, <찬탈> 작품을 했습니다. 그러다 연극원 1기와 2기 몇몇이 모여 만든 프로젝트 그룹 ‘그룹 동시대’에 들어 가게 되었어요. 1기 연출과 오유경, 연기과 출신인데 뮤지컬 극작으로 유명한 이희준, 무대미술과 조성한이 주축이 되었는데요. 배우들과 프로젝트로 모였다 흩어지는 형태도 마음에 들었고, 자유롭지만 소속감이 있다는 것이 일종의 안도감을 주기도 하여 소속되기로 했던 거죠. 이후 오유경 연출이 혜화동 1번지 동인이 되면서 3년간 극장을 동인들과 나눠 쓸 수 있게 되었어요. <오! 발칙한 앨리스>, <안전 제일>, <연-불타다>, <아가멤논가의 비극>, <박제갈매기>, <강철여인의 거울>, <오셀로 오셀로> 작품을 함께 만들어 나갔어요. 그중 <아가멤논가의 비극>으로 혜화동 1번지 3기 동인 연출들과 배우들, [공연과 이론] 분들이 투표로 ‘훌륭한 여자 배우상’을 주셨어요. 정말 활짝 웃으며 수상했던 기억이 나네요.
학교에서 연기뿐만이 아니라 자유롭고 창조적인 연극 만들기에 대해서 저는 배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어떠한 작업을 하더라도 곧이곧대로 하지 않고 비트는 작업 같은 걸 했었어요. 지금까지 인상적으로 남아있는 작품이 <연-불타타>라는 1인극입니다. 한 시즌에 하나의 주제를 정해놓고 여러 극단에서 작품을 했어요. 그러다 겨울에 실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저하고 이상홍 배우가 다른 얘기로 작품을 했어요. 제 작품은 <연>이라는 작품으로, 지구가 종말에 가까워져서 풀도 다 죽고 사람들이 사라지는 환경에서 살아있는 한 여자의 이야기였어요. 제가 쓴 작품이었어요. 나에게 추억할 거리만 있는 상자가 있다는 얘기로부터 출발을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느리게 호흡하면서 연기를 할까를 실험했어요. 내용을 간략하게 말하면 홀로 살아남은 여자가 아침이 돼서 상자를 열어보고 그곳에 추억의 물건을 꺼내면서 회상을 하고 그 머리를 빗고 이런 하루의 이야기였어요. 진짜 느리게 40분 정도 했어요.
그때 그러한 작품을 왜 했냐면, 무용원 창작과 김삼진 교수님의 ‘박과사위’라는 수업을 들었어요. 교수님이 연기과 친구들을 참 좋아하셨어요. 항상 “왜요?”라고 질문을 하는 우리가 재밌다고 하셨어요. (웃음) 교수님은 항상 ‘10에서 9을 뺀 하나’를 가지고 춤을 추라고 하셨어요. 명확하고 정확한 어떤 순간을 만들어내어, 과하게 다 표출하지 않아도 어느 한 순간, 에너지로, 손끝에 남아 있는 이 에너지만으로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얘기가 저한테 엄청 영감이 됐었거든요. 그래서 그러한 실험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또 한 작품 <안전지대>. 천 년 동안 아크릴에 갇혀있던 여자에 대한 작품이었어요. 그래서 그때 생식을 먹고 살을 엄청 빼서 그 작품을 했어요. 1000년을 갇힌 여자라니 체지방 미달이 되어야 한다며 메소드 연기를 한 거죠. 이후 저의 체지방은 돌아오지 않았어요. 이러한 작품들을 하고 주변에서 얘기하더라고요. 유명한 선생님들의 극단에 들어가서 활동하면 더 유명해질 텐데 왜 그런 실험을 하느냐고. 근데 전 정말 후회가 안 돼요. 그래서 지금도 작업할 때 주도적이고 능동적으로 작업을 해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게 몸에 장착돼 있다고 할까요. 작가가 써놓은 걸 상상을 하고, 거기에 보태기를 하고, 행간에 숨어 있는 것들을 찾아내는 작업이 되게 즐거워요. 실험적인 작품들을 했던 시기가 저한테 엄청난 자양분이 됐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저와 함께 했던 창작자 동료 분들은 “이주영 배우는 참 열려 있어”라고 한답니다.
2007년부터 ‘그룹 동시대’ 활동을 벗어나 <명성황후, 내가 할 말이 있다>,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 <여우들의 동창회>, <고백>, <검은 입김의 신>, <2017 애국가>, <당신이 그리움으로 멀어져 간다는 것은>, <와이프>, <두산인문극장-당선자 없음>, <콜타임>, <슈미> 등을 했습니다. 그 사이사이엔 상업영화와 단편영화, 드라마도 꾸준히 하면서요.
Q. 그렇다면 작품을 선택하실 때 기준이 있으실까요?
첫 번째로는 마음에 닿는 희곡! 더불어 창작극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창작극은 비교적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동시대의 이야기와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니까요. 그래서 그러한 작품의 ‘초연’을 함께 만들어 간다는 것이 저에게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번역된 작품이나 각색된 작품도 마찬가지지만요. 그리고 ‘초연’으로 끝나지 않고 레퍼토리화 되도록 디벨롭 하는 과정에 보탬이 되고 싶어요. 좋은 작품들이 많은 관객을 만나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지요.
두 번째로는 이 희곡이 무대화되었을 때 동시대 관객과 어떻게 만날까를 고민해요. 공감이 어떤 형태로든 이루어지느냐인 거죠. 그리고 다음으로는 함께 하는 창작자가 어떤 ‘세계’로 ‘마음’으로 작업하는 사람인지를 봐요. 연극은 결국 사람들을 만나는 작업이잖아요. 그래서 이 사람이 어떻게 나랑 친구가 될 수 있지 고민할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저는 다 친구가 돼야 된다고 생각해요. 선후배 상관없이 다 저는 동료라고 생각하는데 만나서 어떻게 작품이 나올 수 있을까 대화를 하고 고민해요. 그리고 인물, 역할에 관해서는 그 작품들이 저한테 필요한 시기마다 자연스럽게 오는 것 같아요. 감사하게도요.
Q. 그간 해오셨던 작품에 대한 얘기를 하시면서 동시대성에 관해서 말씀하셨어요. 현재 배우님은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면서 연기를 하고 계시잖아요. 그럼에도 연극이 오늘날에도 유효한 지점이나 연극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관객에게 줄 수 있는 어떤 감각에 대해서 배우님의 생각이 궁금해요.
그날, 그 순간, 그 시간에 극장이라는 공간에 있는 관객들이 함께 ‘목격’하고 함께 ‘숨’을 쉬게 되는 거잖아요. 그게 엄청난 것 같아요. 2016년 이후 연극의 3요소에서 ‘관객’이 얼마나 중요하지 드디어 알아채었거든요. <그을린 사랑>을 할 때 3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관객과 함께 살았다는 걸 저는 목격했어요. ‘나왈’로 ‘숨’ 쉬며 제가 믿고 있고 존재하는 시공간을 함께 했다는 것이 ‘숨’으로 다 느껴졌거든요. 몇 백 명의 관객이 커튼콜 때 함께 웃고 눈물 지으며 보냈던 기립박수에서 정말 뜨거운 마음이 되는 순간에 증명 되었어요. 그러함으로 배우들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관객 때문이에요. 저는 그 반대로도 얘기하고 싶어요. 관객이 존재하기 때문에 연극이 있더라고요.
함께 숨 쉬고, 때로는 거리를 바라보고 있는 순간을 목격하고, 그리고 어쩔 때는 자기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일지라도 그것을 불편해하고 화를 내 분노가 일으켜지면서도 이걸 이 시간을 함께 하는 시간이 정말 중요한 거 같아요. 요즘에는 돈보다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말하잖아요. 연극은 언제든지 선택해서 그냥 스킵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잖아요.
<비평가>라는 작품을 할 때 만났던 팬들이 있어요. 비평가와 작가와의 싸움 속에서 연극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는 그 작품으로 그 팬들이 다른 작품을 보고 또 다른 어떤 불들을 본 거예요. 불이 옮겨 붙는 듯한 경험하게 되는 좋은 작품을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관객들은 그런 것들을 너무 원하고 있어요. 클래식에서도 유명한 연주자가 미국이나 일본 가서 콘서트를 한다면 휴가를 내서 가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그런 분들이 거길 왜 갈까 생각했더니, 그 연주자가 그날의 컨디션으로 그 날의 그 연주에서만의 라이브성! 그것을 공감을 하고 싶고, 만끽하려고 간다고 생각했어요. 한국 연극 관객들도 언젠가 어떤 배우가 베를린에서 공연한다면 베를린으로 비행기 티켓을 끊어서 그 배우들을 보러 갈 수 있는 거잖아요. 그게 힘이 아닌가. 어찌 보면 되게 희망적이죠. 더 좋은 작품을 만들면 얼마든지 된다! 외롭지 않을 거 같아요.
Q. 주영 배우님이 20년 넘게 어떤 원동력으로 작업을 이어 하실 수 있는 그 힘이 좀 궁금해요.
저는 좀 긍정적인 사람이에요. 스트레스를 풀거나 내 안에 갇혀있는 어떤 답답함을 풀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어요. 어떤 경우는 반박을 하거나 생각하지 않고 일단은 내려놓아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부분도 있겠지만요. 저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좋다 생각해요. 한동안 1년 정도 작업이 없었던 적이 있어요. 그래서 김영모 제과점이라는 데서 아침에 알바를 했어요. 그래서 거기서 커피도 배웠고, 맛있는 샌드위치 빵 다 배웠어요. 그리고 이제 손님들 사람들도 관찰하고. 그리고 헬스하고 그랬어요. 그때 되게 힘들었는데 그렇게 하면서 그냥 버텼어요. 라디오 헤드의 <High and Dry>라는 노래가 있는데 그때 헬스하면서 듣고 되게 힘이 됐었어요.
어떤 시기엔 어머니께서 병원 생활을 오래 하셨는데, 다행스럽게도 엄마를 간병할 수 있는 시간이었죠. 그때 당연한 효도도 하고 삶과 죽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러니 이 삶을 긍정적이게 살아야 할 이유들이 더해진거죠. 이러한 일들이 오히려 저한테는 또 좋은 기회였죠.
일화가 있어요. 2009년에 혜화동 일번지에서 나와서 1기 김민정 언니랑 뮤지컬을 처음하게 됐죠. 상업이라는 데에서 처음 일을 하면서 ‘여기서 내가 어떻게 살아남아야하지’ 이런 생각을 처음 했었어요. ‘이런 현실이 있구나’ 하면서 또 배운 것들이 있어요. 억울하고 힘든 일도 있었지만 김민정 연출 언니가 마지막에 “너는 한 번도 얼굴 붉히지를 않더라. 끝까지 되게 긍정적으로 잘 버티더라.” 했어요. 잘 버텼죠, 긍정적으로! 그 이후로 제작사에서도 앵콜 공연 때도 배우 이주영을 다시 불러야지 했었거든요.
어쨌든 그런 시간들을 거쳐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자연스럽게 ‘지혜’가 생겼던 것 같아요. 우린 대부분 내 안에 ‘지혜’가 있는데 그 지혜를 발견하지 않고, 외면하고 있는 것 같아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가 답을 갖고 있어요. 정답은 아니겠지만 어떻게 길을 가야 할지를 아는, 타인이나 바깥이 아닌 내 안의 중심에서 들려오는 ‘지혜’ 그게 긍정적인 마음이었던 거 같고요. 그래서 옆에 위기가 있었을 때, 일을 쉴 때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러고 2014년에 노다 히데키랑 <반신>을 할 때도 생각이 나요. 무대 뒤 소대에서 대기하고 곧 무대로 나가기 작전이었어요. 심지어 첫 공연이었어요. 노다 연출이 도쿄 첫 공연에서 그러더라고요. 노다는 배우 출신이고 나이 차이가 나지만 저랑 되게 친구처럼 지냈어요. 저에게 “왜? 긴장돼?” 하며 웃는데 그 순간 너무너무 마음 저리게 너무 행복한 거예요. 준비하는 과정 공연 모두 특별하기도 했지만 그 순간이 잊히질 않아요. 근데 그때 생각했어요. ‘나 또 힘들어질 수 있어.’ ‘주영아 2014년도에 아비뇽도 가고, 도쿄도 가고, 너무나 기쁜 일이 벌어졌지만, 너 다시 돌아갈 수 있어. 너 이거 각오해라. 이거는 이 순간이야. 이거는 다시 과거가 될 거야. 하지만 이 순간을 정말 즐기고 열심히 하고 잘 해야지.’ 했어요. 그런데 그 이후 다행히도 좋은 일들이 많이 생겼어요. 좋은 작품들이 오더라고요. 너무 고마운 일입니다.
Q. 배우로서의 규칙이나 루틴 같은 게 있을까요?
배우로서의 규칙과 루틴을 범위를 넓혀서 얘기하자면요. 이주영 재산 쌓기를 합니다.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요. 그 루틴으로 예전에는 책을 많이 읽었어요. 전시, 영화도 많이 관람하고, 음악도 다양하게 듣고요. 배우로서 이 모든 것이 재산이 된다고 생각하고 많이 저축했거든요. 변화라면 여행을 많이 갑니다. 공간을 이동하면서 생기는 해방감과 자유로움이 저에게 큰 영감의 재산이 되더라고요. 예술 작품이 주는 영감과 자연이 주는 영감 두 가지 다 저에게 큰 힘이 돼요. 그리고 도파민 중독! 넷플릭스나 유튜브도 많이 봐요. 릴스, 숏폼들도요. 지금의 사람들이 뭘 하는지를 알아야 시대적인 감각을 체험 할 수 있거든요. 자극적인 콘텐츠도 나라마다 특성이 있더라고요. 실제로 여행 가서 경험하는 것도 있지만 각 나라 드라마를 통해 그들의 이야기의 결과 기질들이 보이더라고요. 아름다움에 대한 결들도 다양하게 보이고요. 소재의 다양함 시선들을 경험하게 되는 거죠. 이런 것들이 저에게 계속 저축되는 영감의 자본이 되어줘요. 다양성을 위한 루틴이요.
몸으로 하는 규칙은 수영과 헬스입니다. 플라멩코, 탱고도 좀 배웠고요. 제가 두려움이나 겁이 많아요. 1년 전 여행을 갔는데 무서워서 바다에 못 들어갔어요. 그러고 수영을 배워야 되겠다 싶어서 배웠어요. 왜 배웠냐면 두려워하는 것들에 대한 도전이 행해져야 함을 절실히 느꼈거든요. 파도치는 흔들리는 배를 타도 두려워하는 나를 향해 ‘나 왜 두려워하지? 아이는 저렇게 즐기고 있는데 이주영으로서의 삶, 배우로서의 삶이 진일보 하려면 좀 맷집을 키워야 되겠어. 그러니 당장 행하자’ 앞으로 맡게 될 역할들이 두렵고 도전할 만한 역할들이 오게 하려면 스스로 던져 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제 루틴이라면 이 모든 것을 채우고 다양하게 표현하고 마지막에는 결국 덜어내기입니다. 작품에서 저는 수용을 충분히 하고 표현 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다양하게 펼친 후 10에서 9을 뺀 하나를, 하나에서 다시 9을 뺀 하나를, 비워내고 역할의 ‘숨’을 삽니다.
Q. 앞으로 더 도전하고 싶은 게 있다면요?
스쿠버다이빙이요. 그리고 코미디를 해보고 싶어요. 근데 코미디가 진짜 어렵다고 생각해요. 위트 있는 작품을 좋아해요. 정말 비극적인 이야기인데 그 안에서 웃음이 있고 코미디가 있는 작품을 정말 해보고 싶거든요. 그러한 블랙 코미디가 관객들에게 주는 엄청 큰 힘이 있다고 생각을 해요.
Q. 학교생활은 어떠셨나요? 일화 같은 걸 소개해 주셔도 좋아요.
학교생활 정말 즐겁게 했어요. 연애도 열심히 하고요. 연출 수업이나 무대디자인 수업들도 너무 재미있었어요. 제가 공강 때 도서관에 있는 시간을 좋아 했는데요. 사진집이나 화집 보는 걸 좋아 했거든요. 영화도 그때 학교에서 많이 봤어요. 소위 예술영화라고 하는 것들이요.
또 슬로바키아 이스트로폴리아나 연극 축제를 갔던 게 학교생활 중에서도 상당히 좋은 경험이었어요. <갈매기>의 뜨레플레프가 쓴 니나 대사 있잖아요. 그걸 가지고 페스티벌에서 한 장면을 만드는 게 모든 참가국들이 하는 필수 공연이었어요. 그때 오디션을 봤는데 저는 떨어졌거든요. 그때 자유공연도 한 작품 가게 되어서 낙담하지 않고 긍정 파워로 함께 하게 되어 슬로바키아에 가게 되었어요. 그 작품이 <꼭두각시놀음>이었고 저는 덜머리집 역할을 맡아 모든 것을 가금이 중심이 되어 움직이는 인형 움직임으로 한마디 대사 없이 관객들의 사랑을 받는 쾌거를 이루었어요. 그리고 슬로바키아에 축제를 즐기고 유럽 여행을 하게 되었어요. 두 달간. 그때 아비뇽에 가서 아비뇽축제 공식 참가작들을 여러 편 봤습니다. 그게 저한테는 한 10년을 버티게 할 수 있는 힘이 되었어요. 정말 세계적인 공연의 무려 초연을 본 뒤 ‘연극이 판타지가 될 수 있구나. 그것이 아름다움이 될 수 있구나’ 깨달았어요.
Q. 앞으로 현장에서 만나게 될 후배들에게 해주실 말씀은?
학교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실험들 할 수 있는 한 많이 하고 재미지게 하고 현장으로 나왔으면 좋겠어요. 내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귀 기울이는 시간이 중요한 것 같아요. 너무들 타인과 비교하고 비교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잖아요. 우리 후배들이 힘들어한다는 얘기를 여러 번 듣고 가슴이 참 아팠어요. 그래서 저는 ‘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더 보듬어 주고 사랑해주라고 말하고 싶어요. 밥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고 결국 건강한 생활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단단해지고 유연해지면서 드디어 타인을 바라볼 여유 타인의 이야기를 들을 여유가 생기거든요. 그렇게 되면 우린 현장에서 만나게 되었을 때 정말 진실된 반응을 하는 배우로 서로를 알게 될 것 같아요. 함께 또 다르게 ‘숨’ 쉬는 배우로 곧 어디서든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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