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은경(연극학과 전문사과정)
‘우리’와 ‘그들’을 가르는 경계는 때로 지나치게 견고하다. 스스로를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이라 일컫는 이래은 연출가는 경계의 벽을 완전히 무너뜨리기보다 한쪽 구석에서 조금씩 갈라지는 틈을 들여다보려는 사람이다. 그는 관객에게 자신의 옆자리를 내어주며 자신이 발견한 그 균열의 지점을 함께 바라보자고 권한다. 경계는 배제를 필연적으로 수반하기에 그 바깥에 있는 누군가를 다치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라는 경계의 너머에 존재하는 누군가의 연약함을 지켜내려다 자신을 지키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래은 연출가의 연극 세계도 그렇다. 그의 연극은 마치 반창고처럼 여러 층위의 경계를 넘어 모든 존재의 연약한 부위를 감싸 안는다.
Q. 학부에서는 연극을 전공하지 않으셨지만, 연기과 아동청소년연극전공 전문사과정에서 본격적으로 연극을 시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연출님에게 학교에서 연극을 배우고 만들어가던 시간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요?
그 시절을 나타내는 단어를 하나만 고르자면 ‘격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이 단어를 어제 질문을 보면서 처음 써봤어요. 제가 전문사 아동청소년연극전공 2기인데요, 당시 선생님들이 열정이 굉장히 충만하셨어요. 그래서 커리큘럼이 정말 빡빡했죠. 선생님들이 소개해 주신 영어 논문들을 하나하나 직접 번역해 가며 읽어야 했고, 논문에 필요한 자료를 구하기 위해 국립중앙도서관에 가서 20~30년대 신문 자료를 직접 찾아보기도 했어요. 옛날 신문이다 보니 한자와 한글이 섞여 있어서 하나하나 뜻을 찾아봐야 했죠. 쉽진 않았지만 재미도 있었어요. 제가 사학과 출신이라 그나마 한자를 찾아 읽을 땐 도움이 됐어요.
또 각자 전공이 있긴 했지만 타 전공 수업을 듣는 데 제약이 없어서 다양한 전공의 수업을 들을 수 있었어요. 선생님들이 학교 다닐 때 만났던 동료들을 초대해 강의를 열기도 했고, 극작 수업이나 즉흥 연기 수업을 다양하게 배울 수 있었어요. 즉흥 연기 수업은 한 학기 내내 세계 각지의 놀이만 하기도 했어요. 놀이가 가지고 있는 연극성을 몸으로 경험하고 한참 놀고 나서 즉흥성과 관련된 글을 읽고 토론하는 수업이었죠. 그리고 저는 원래 몸을 움직이는 걸 잘 못하는 편인데, <움직임> 수업도 필수 수업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했어요. 힘들긴 했지만 그 수업을 통해 연극의 작동 원리와 감각의 전환을 몸소 배울 수 있었어요. 특히 나 자신과 분리되어 무대 위의 내가 보이는 감각을 익힐 수 있어서 기억에 남아요.
그땐 전문사실도 하나여서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자유롭게 오가며 교류가 활발했어요. 밥이나 술도 같이 먹고, 전공에 상관없이 어울리다 보니 말도 많고 부딪치는 일도 많았죠. 지나고 보니 학교 다닐 때 다른 학과 사람들과의 교류가 저에게 미친 영향이 정말 컸어요. 특히 학생 중 남학생이 대부분이었는데, 여학생들끼리 모임을 만들었어요. 가끔 파티도 하고, 서로 옷을 늘어놓고 교환하기도 했어요. 아직도 그 친구들과 가끔 연락을 주고받아요.
또 ‘솔밭아트 페스티벌’을 기획했던 일도 기억에 남아요. 정문 입구 솔밭에 야외무대를 세우고 친구들이 공연을 하는 것에서 시작된 축제였죠. 나중에는 규모를 키워 마을 사람들을 초대하면서, 지역과 연계된 축제로 발전했어요. 관객 수도 눈에 띄게 늘어났는데 지금 돌아보면 정말 기획력이 뛰어난 친구들이었던 것 같아요.
Q. 최근 <엔들링스> 공연을 마무리하셨는데요. 해외 희곡을 원작으로 한 작품을 작업하시면서 흥미로웠던 점이나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전에 번역극을 작업한 적이 없었어요. 지금까지는 모두 한국 작가의 창작 작품이었기 때문에 작가님과 활발히 소통하면서 한국어가 지닌 문화적 배경을 토대로 극 중 인물에 접근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시작했죠. 그런데 <엔들링스>는 희곡이 영어로 쓰인 작품이라 원래 쓰인 언어 자체를 들여다봐야 했어요.
처음에 제가 받은 번역본이 두 개였어요. 하나는 초벌 번역본, 다른 하나는 원작자인 셀린 송(Celine Song)이 지정한 번역본이었죠. 그 두 버전만 봐도 다르게 번역된 게 너무 흥미롭더라고요. 그런데 두 번역본 모두 한국어의 문화적 맥락이 충분히 담기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윤색 작업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전서아 작가와 함께 3개월 동안 윤색 작업을 진행했어요. 대사의 감각은 전서아 작가가 만들고 저는 그 문화적 뉘앙스를 움직임으로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지 고민했죠. 연출적으로는 아시아 여성으로서의 이질감, 배제의 감각을 낯설게 하기의 방식으로 설계해 보려고 했고, 윤색 작업에서는 언어가 주는 낯섦 자체를 구현해 보려 했어요. 미국의 문화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김지혜 드라마터그에게 조언을 받았고요. 최종 윤색본에는 윤색자가 어떤 근거로,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수정했는지를 하나하나 기록해 두었어요.
그렇게 완성한 윤색 버전을 보냈지만 원작자 측에서 허락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실제 공연에서는 작가가 지정한 원래 버전을 그대로 사용했죠. 그런데 막상 작가의 답변을 받고나니 왜 안 된다고 했는지를 이해하거나 해석하려 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쨌든 원작자 역시 이민자이고 어떻게 보면 침범당한 경험을 겪어왔을 테니까요. 그래서 결국 번역본의 번역체와 문어체의 말값 그 자체를 이민자성이라 설정하고 작업을 했어요.
이번에 처음으로 번역된 외국 작품을 작업하면서 언어 사이의 촘촘하고 미세한 틈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어 흥미로웠어요. 전혀 다른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감각적으로 체험하는 과정이었죠. 오히려 그 과정에서 한국어 고유의 지역성을 감각할 수도 있었고요. 한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가 열어주는 새로운 세계를 만난 셈이죠. 또 문화에도 시대가 있잖아요. 희곡의 대사 한 단어, 한 단어에는 그 사람이 살아오며 겪은 문화의 흔적이 스며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민자인 작가가 한국에서 어떤 유년기를 보냈을지, 그 시절에 접했던 TV나 문화가 이 작품의 장면들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를 떠올리며 작업했어요.
Q. 연출님의 작품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분법적 구도와 경계가 해체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서울 도심의 개천에서도 작은발톱수달이 이따금 목격되곤 합니다>에서는 수달과
퀴어 커플의 서사가 병치되며 인간과 비인간 동물의 경계가 흐려지고, <엔들링스>에서는 하영과 전라남도 해녀들의 삶이 연결되며 뉴욕과 만재도라는 공간적 경계가 허물어집니다. 이처럼 작품
전반에 나타나는 경계의 해체는 연출님이 의식적으로 탐구하고자 한 주제인지 궁금합니다.
‘경계를 허문다’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제 방식대로 말하자면 ‘연결을 찾는다’라는 의미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그리고 이런 작품을 선택하는 이유는 저 자신이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이라서일 거예요. 저는 어딘가에 속해서 안도감을 얻는 게 잘 안되는 사람이거든요. 예전에는 이런 입장이 이도 저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막상 어떤 그룹 안에 온전히 속해 있으면 그게 오히려 더 불안하더라고요. 내부자들 사이의 친밀함에는 언제나 어떤 형태의 배제가 따라오잖아요. 그래서 저는 자연스럽게 안쪽보다는 바깥을 보게 되는 기질을 타고난 것 같아요.
그렇지만 경계가 너무 공고하면 쉽게 허물 수는 없기 때문에 저는 대신 그 경계 사이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을 작은 틈을 들여다보는 사람 같아요. 그렇게 가만히 들여보다 보면 공고하던 경계에서 조금은 허물어져 있는 부분이 있겠죠. 제가 하는 작업은 경계에서 그런 틈새들을 찾는 게 아닐까 합니다. 물론 그 부분을 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와 함께 그 틈을 바라봐주는 사람들도 있겠죠.
Q. 연출 작업에서 신체에 집중하는 방식을 꾸준히 탐구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신체 언어 중심의 작업을 위해 뇌신경과학적 접근까지 시도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이러한 시도가 실제
연출 과정에서는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특정한 사례가 있다면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이제는 뇌과학이 국민 상식처럼 누구나 알고 있는 지식이 되었잖아요. 저는 액팅 코치인 장재키라는 친구를 통해 책도 추천받고, 뇌신경과학자도 소개받으면서 연출에 뇌신경과학적 접근을 접목하게 됐어요. 감정은 결국 환경의 변화에 따른 신체 반응이잖아요. 그런데 연기를 설계할 때는 계속 반복적으로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고, 그 이야기를 하다 보니 부정적인 경험이나 감정의 경우에는 내상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뇌신경과학적 접근은 연기를 몸의 반응으로 먼저 설계를 하는 거예요. 즉 감정의 상태로 바로 몰입하기보다 그 감정 상태의 몸을 먼저 만든 다음, 그 이후에 감정을 인지하는 식으로 프로세스를 설계하는 거죠. 이렇게 연기를 몸으로 접근하면 자기를 지키고 내상에 대비할 수 있는 신체 상태를 만들 수 있어요. 메소드 같은 연기 기법은 몰입을 중시하지만 그만큼 배우들이 그 상태에서 빠져나오는 게 정말 힘들거든요. 배우가 극 중 인물 그 자체가 되어 살아가는 일은 사람에 따라 굉장히 위험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연기과에서는 인물을 설계하고 몰입하는 방법은 가르치지만 그 인물로부터 어떻게 빠져나올지는 개인의 몫으로 남겨두는 경우가 많은 것 같더라고요.
웹진 <연극in>에 장재키 액팅 코치가 진행한 워크숍 내용을 드라마터그 장지영이 정리한 인터뷰가 있는데, 배우의 신체적·정서적 손상을 다뤘어요. 예를 들어 누군가를 가해하는 행동을 연기하려면 어쨌든 폭력적인 몸짓을 반복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면 그 행위 자체로 인해 배우는 스트레스 상태에 놓이게 돼요. 그래서 그에 대한 대비책으로 그 행동과 반대 방향으로 몸의 각도를 틀어 한 번 더 움직이면서 몸을 본래의 상태로 되돌리는 방법이 소개됐어요.
청소년극에서 성인 배우가 청소년이나 아동 역할로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인식되도록 하는 과정에도 뇌신경과학을 활용했어요. <이것은 사랑이야기가 아니다>에서 30대와 40대 여성 배우들이 8세와 90세의 인물을 연기해야 했을 때 얼굴의 12 신경체계를 참고했어요. 예를 들어 8세를 연기할 때는 어린이의 중안부 근육이 덜 발달해 있다는 점을 고려해 잇몸이 드러나고 얼굴을 들어 말하도록 했어요. 반대로 90세의 노인을 연기할 때는 인중을 길게 늘이고 입 주변 근육을 느슨하게 만들어 표현했죠. 이런 식으로 신체 발달에 따른 세부적인 차이를 관찰해서 각 인물의 나이에 맞게 몸을 설계하는 방식을 썼어요.
Q. 2005년 <고양이가 말했어>로 데뷔하신 지 올해로 20년이 되셨습니다. 오랜 시간 연극 작업을 이어오시며 연극을 바라보는 태도나 마음가짐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최근에 ‘성장’과 ‘변화’에 대해 생각해 봤어요. 성장은, 예를 들어 애벌레가 변태를 거쳐 나비가 되는 것처럼 자연적으로 설계된 과정이잖아요. 일종의 엔트로피처럼요. 그런데 변화는 그것과는 다르게 힘을 들여 스스로를 다른 상태로 만들어가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보면 성장과 변화는 성격이 다른 것 같지만 결국 둘 다 나아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죠.
성장을 예로 들자면, 제가 나이 들면서 청력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거든요. 예전보다 잘 안들리니까 자연스럽게 말수가 줄었어요. 예전에는 잘 안 들리면 꼭 물어봤어요. 그런데 그게 생각보다 에너지를 많이 쓰더라고요. 그래서 이제는 그냥 잠깐 멈춰서 쉬어요. 그렇게 생긴 여백이 또 다른 감각으로 연결되기도 해요.
이런 부분을 변화와도 연결해서 요즘은 듣기의 온오프를 연습하고 있어요. 필요한 순간에는 스위치를 켜듯이 볼륨을 높여 더 집중해서 듣는 거예요. 예전에는 이런 온오프가 잘 안됐어요. 소리가 많은 공간이나 극장에서는 집중하기가 특히 어려웠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필요할 때는 볼륨을 높이고 아닐 때는 잠시 낮추면서 훨씬 더 집중력 있게 들을 수 있게 됐어요.
연극을 대하는 태도에 관해서는 예전에는 연극에는 인정이 필요하고 시간을 들여 어느 정도 재능과 노력을 쌓아야만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믿었어요. 공연이 끝나면 선배님들이 와서 “이 장면은 이렇게 연출해라”라는 조언을 직접적으로 건네는 경우도 많았어요. 그때는 그런 말들이 저에게 주는 영향이 아주 컸지만 이제는 그 말 중에서 나에게 필요한 말만 들으면 된다는 걸 알게 됐어요. 누군가 공격적인 의도로 말을 하더라도 “아, 그렇게 보일 수도 있구나” 하고 넘길 수 있게 된 거죠. 사실 그렇게 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휩쓸려서 자꾸 상처받게 되더라고요.
Q. 연출님께서는 쉼 없이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계신데요, 그 에너지와 원동력을 어디에서 얻으시는지 궁금합니다.
고양이 털이라든가, 운동이라든가. 사실 운동을 잘 못하거든요. 몸이 약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운동을 안 하면 작품이 결국 자기 몸을 깎아서 만드는 생산물이 돼요. 그렇게 작품을 하더라도 가끔은 결과가 좋을 때도 있어요. 저 역시 운이 좋게도 그렇게 만들어도 결과가 나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한 작품을 위해 나를 깎아내는 방식으로 작업을 해서는 이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창작은 어쨌든 고통스러워야 나오는 것이지만 몸을 깎아 누군가를 해치거나 나 자신을 해치는 방식이 아니라 흡수하고, 섞고, 다시 꺼내는 방식으로 해야만 오래 할 수 있고 결과도 훨씬 좋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남도 해치지 않고 나 자신도 다치지 않으면서 작품을 할 수 있도록 버티는 근육을 키우고 있어요.
최근에는 작업이 바빠서 잠깐 못 했는데 그저께부터 다시 아크로바틱을 시작했어요. 거기는 몸을 잘 쓰는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저 같은 사람을 보면 ‘뭐지?’라는 식으로 쳐다봐요. 몸을 잘 쓰는 분들은 제가 왜 그 동작을 못하는지 이해를 못 해요. 저는 1년 넘게 핸드스프링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아직 못 하고 있어요. 그래도 선생님이 몸을 너무 잘 이해하시니까 조언을 받을 수 있는 게 좋아요. 이 동작이 왜 안 되는지 물으면 “지금 여기에서 어깨를 살짝 밀어보세요”와 같은 디렉션을 해주세요. 그게 너무 섬세해요.
또 아크로바틱을 배우면서 몸에 대한 감각이 열리는 걸 경험해요. 선생님이 하는 동작을 눈으로 보고 따라 하는 것, 그 동작의 순서를 머리로 외우는 것, 그 동작을 실제로 내 몸으로 움직이는 것 같은 행동은 뇌의 서로 다른 영역을 사용하면서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거든요.
Q. 요즘 연출님께서 특히 흥미를 느끼고 계신 분야나 관심을 두고 있는 것들이 있을까요? 작업과 관련된 것이어도 좋고, 취미나 동물, 사물 등 어떤 것이든 괜찮습니다.
에릭 로메르 영화에 빠져 있어요. 로메르의 영화에서는 드라마가 강하지 않잖아요. 로메르는 상황만 던져 주고 배우들이 자연스럽게 연기를 하는 식으로 영화를 만드는데, 연극에서도 이런 방식을 어떻게 구현하면 좋을지 생각해 보고 있어요.
극장에서 공연을 올릴 때 저는 배우들과 연기를 아주 촘촘하게 설계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아무리 치밀하게 계획해도, 그날의 관객 반응이나 공연 상황, 그리고 상대 배우가 누구냐에 따라 무대는 매번 다르게 흘러가죠. 계획했던 것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순간도 생기는데, 그런 즉흥성이 공연에 활력을 불어넣기도 하지만 동시에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위험하기도 해요. 그런데 바로 그 위험 속에서 새로운 감각이 생기기도 해요. 그래서 연극에서도 위기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범주 안에서 즉흥적인 재미를 발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됐죠.
사실 배우들은 매 순간 무대 위에서 살아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연출로서 저는 그들이 그럴 수 있도록 무엇을 해야 하고, 또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를 늘 생각해요. 연습하는 동안 치밀하게 설계한 세계와 무대 위에서 즉흥적으로 펼쳐지는 세계 사이에서 배우들이 생생히 존재할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제가 좋아하는 앙상블 훈련 중에 이런 게 있어요. 세 명이 나란히 앉아 대화를 하는데 가운데 있는 사람이 양쪽 사람과 동시에 이야기를 나누는 거예요. 한쪽에서는 어젯밤에 본 연극 이야기를, 다른 쪽에서는 며칠 전에 다녀온 바다 풍경 이야기를 하죠. 가운데 있는 사람은 이 두 대화에 동시에 참여해야 해요. 처음에는 당연히 혼란스럽지만 계속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어느 정도 두 대화를 동시에 이어갈 수 있게 돼요.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 혼란스러움 자체를 즐기게 되죠.
이 훈련이 흥미로운 건, 옆에 있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는 점이에요. 짝을 계속 바꿔가며 하다 보면 감각이 더 넓게 열리고 자기 성향도 점점 뚜렷이 드러나요. 어떤 사람은 점점 더 몰입하며 욕심을 내고 어떤 사람은 포기하고 조용히 듣기도 하죠. 포기하고 가만히 듣더라도 두 이야기를 동시에 듣는 감각은 켜지죠.
Q. 마지막으로 학교에 다니시던 시절의 연출님 자신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 조언을 저희와도 나눠주실 수 있을까요?
그때의 저에게 할 말은 없어요. 그냥 조용히 곁에 앉아있고 싶어요. 과거의 저에게 말을 건넨다는 게 쑥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사실 그때와 지금의 내가 별로 달라진 것 같지도 않아서요.
예전에 서른 살 무렵 잠시 일본에 있었을 때, 오십 살인 친구가 있었어요. 제가 그 언니에게 “서른 살이 됐는데도 아직 이 모양, 이 꼴이라는 게 충격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었죠. 그랬더니 그 언니는 “그런 고민은 마흔이 돼도, 오십이 돼도 똑같아. 나이 들어도 달라지는 건 없어”라며 웃었어요. 그때는 그 말이 절망적으로 들렸는데 이제는 그 언니가 어떤 마음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조언을 나눠달라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런저런 말을 건네기보다 그냥 꼭 안아드리고 싶어요. 그래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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