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다연(연극학과 전문사과정)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현우, 조인숙, 조정일, 고재귀) ©손은경
창작집단 독은 ‘함께’의 가치를 믿는다. 글과 싸우며 누구보다 절절한 외로움을 겪어봤을 작가들이기에 함께하는 이들의 모습은 단단하기 그지없었다. 홀로 감당해야 했던 커서의 압박을 나눌 수 있기에 이들의 모임은 서로에게도, 서로의 작품에도 든든한 기반이 된다. 어느새 20년이 훌쩍 넘은 이들의 연대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2025년에만 <기형도 플레이>와 <팬데믹 플레이>, 두 작품을 공연한 창작집단 독은 여전히 활발하게 변화하고 치열하게 고민하며 함께할 방법을 찾고 있다.
Q. 창작집단 독을 간단하게 소개해 주세요.
조정일 창작집단 독은 극작과 출신 작가 아홉 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중에는 시집 서점을 운영하며 시를 쓰는 유희경 작가도 있고, 천정완 작가처럼 소설을 쓰기도 하고, 학교 강의를 하는 분들도 있어요.
창작집단 독의 첫 번째 희곡집 <당신이 잃어버린 것>은 김태형 작가의 1인 출판사 ‘제철소’에서 처음 찍어낸 책이에요. 처음에는 희곡집 만들어서 어쩔 거냐고 말렸는데 벌써 3쇄를 앞두고 있어요. 희곡집 덕분에 많은 분들이 저희 작품을 알고 써 주시기도 해서 보람을 느낍니다.
Q. 창작집단 독을 결성하시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김현우 처음 고재귀 작가님께서 <당신 이야기>를 연출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주셨는데, 그게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의 충만함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 계속 이 작업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 이후로 작가들끼리 모여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외로우니까 모여보자는 마음에서 주변 극작가 친구들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거창한 무언가를 만들어보자는 건 아니었고요.
처음에는 ‘창작집단 독’이 아닌 ‘극단 독’으로 시작했고 기획자 한 분이 계셨어요. 처음 목표는 보통의 극단처럼 우리 힘으로 연극 한 편을 올리는 것이었는데요. 이후에 작가분들이 들어오면서 희곡 스터디의 느낌으로 변화한 것 같아요. 당시 문지문화원 ‘사이’라는 공간을 무상으로 대여해 스터디를 했는데, 그 대신 낭독 공연을 해야 했어요. 그래서 <터미널>을 통해 옴니버스를 처음 시도하게 되었고, 해보니 저희도 재밌어서 <당신이 잃어버린 것>까지 같은 방식으로 작업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조정일 ‘사이’에서 했던 공연이 반응이 좋았어요. 보러 오신 분 중에 전인철 연출님이 계셨는데, 그때 인연이 이어져서 맨씨어터와 <터미널>을 함께 작업하기도 했어요. 학교 선생님들께서도 저희 방식을 흥미롭게 봐주셔서 <사이렌>도 같은 방식으로 올리게 되었어요. 그런 식으로 외부에서 흥미를 가져주시면서 공동작업이 늘어갔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창작집단 독이라고 하면 옴니버스 작업을 하는 집단으로 생각해 주시지 않나 싶습니다.
Q. 독의 기존 의미와 각자 느끼는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김현우 의미가 별로 없어요. 모여서 술을 마실 핑계가 필요했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처음에는 ‘독’이라는 단어에 포이즌(poison), 홀로 독(獨), 선착장(dock) 같은 여러 의미를 갖다 댔어요. 그런데 지금은 잘 모르겠고.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저는 ‘독’이라는 이름이 적합하다고 느껴요. 각자 쓴 작업의 결과물이 모여 어떤 집단을 이루는 거니까, 그 결과물이 선착장처럼 출항의 의미가 될 수도 있고 목표점에 도착하는 의미가 될 수도 있는 거고요. 외롭지 않으려고 모인 사람들이니까 함께 간다는 의미에서 적합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조인숙 ‘독’에 대해서 얘기를 한 적 있는 것 같아요. ‘독’에 다양한 의미가 있을 수 있고, 굳이 정하지 말자는 이야기도 했던 것 같고요. 저는 주어진 이름이라 특별히 깊이 있거나 거부감이 있진 않은 것 같아요. 부모는 의미를 가지고 지어주겠지만 아이한테는 그냥 주어진 이름인 것처럼요.
조정일 저희의 작업 방식을 ‘독 플레이’라고 부를 만큼 공동창작 방식이 내외부 모두에서 저희의 정체성이 된 것 같은데, 그걸로 저희한테는 의미가 충분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아홉 명이 지금까지 모두 같은 자리에 있고 같이 시간을 보낸다는 점이요.
Q. 공동창작 주제는 어떤 방식으로 정해지나요?
조인숙 모두가 꼭 의견을 내는 것도 아니에요. 누군가가 여러 개를 낼 수도 있고 처음엔 의견이 없었지만 듣다가 의견을 낼 수도 있는 거고요. 자유롭게 요즘의 관심사에 대해 말하거나 이런 주제를 다루어야 하지 않을까 이야기하기도 해요. 그런데 대부분 정해지는 주제는 전혀 다른 주제일 때가 많아요.
Q. 정해진 주제에 대한 자유도는 높은 편일까요?
김현우 큰 주제만 지켜지면 관용도는 높은 편이에요. 그 점이 오히려 독의 작품을 더 특색 있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조정일 하나의 키워드로 시작하지만 저희도 나중에야 각자의 생각이 모두 달랐다는 것을 알게 돼요. 이를테면 <사이렌>은 사회에 대한 경고라는 취지를 가지고 있었어요. 사람들이 어떤 허상에 빠져서 자기 자신도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채 살아가는 모습을 다루면서 그에 대한 경고로 사이렌을 이용하기로 했거든요. ‘사이렌’이라는 주제 아래 각자 불안정한 사람들을 하나씩 발견하고 이야기를 만든 거죠.
김현우 작품마다 공통의 약속을 넣었어요. 첫 작품인 <서울역>에서는 상자가 하나씩 나와야 한다는 약속이었어요. 내용물은 각자에게 맡기지만 아무튼 상자가 하나씩 나온다. <사이렌>에서는 맥락을 구체화하기 위해서 ‘안산시에 있는 주상복합 건물에 모여 사는 사람들’이라는 공통적인 틀을 만들어놓고 작업을 했어요. 각자 주제를 구체화해 나갈 수 있는 공통의 기반 같은 거랄까요.
조정일 아홉 명의 작가가 쓴 단독적인 이야기이지만 무대에서는 하나의 이야기로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같은 공간이나 작품을 관통하는 인물을 사용하는 방법을 택한 거예요. 그 뒤로도 연결의 과정이 꼭 필요한지, 어떤 방법이 좋은지 매번 고민을 해왔는데 <기형도 플레이>와 <팬데믹 플레이>를 연달아 하면서 이야기가 연결되면 힘이 더 생긴다는 사실을 경험한 것 같아요.
Q. 이전까지의 작품들과 달리 <팬데믹 플레이>는 같은 인물들이 계속 등장하는 식으로 각 에피소드가 명확히 연결되어 있었던 것 같은데요. 이 점이 대본집과 가장 큰 차이라고 느껴졌습니다. 대본집과 다르게 공연을 구성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김현우 <팬데믹 플레이>는 저의 오랜 꿈이었어요. <터미널>에서부터 개별적인 옴니버스가 아닌 하나의 작품이 되기 위해서 공통적인 약속이나 장소, 인물을 넣으면서 여러 가지 실험을 해봤는데요. 스토리로 엮는 게 우리가 결국엔 지향해야 할 방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계속했거든요.
<기형도 플레이> 때도 제가 연출로서 장난을 쳤지만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 같아요.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의 알바생과 <질투는 나의 힘>의 마지막 학생 이름이 같거든요. 그래서 알바생이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책을 펼친 뒤 소설가로 등단하는 저주의 이야기로 만들어 봤어요.
<팬데믹 플레이>는 오랜만에 자체적으로 제작하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어요. 대략적으로 구상을 해보니 9편을 완벽하게 엮는 건 어렵겠더라고요. 그래서 파트를 나누어 각 파트에 대한 대략적인 제안을 드렸고, 그 안에서 작가님들끼리 소통을 하셨어요. 예를 들어 고재귀 작가님의 <우리는 만나지 않았다>는 유희경 작가님의 <사랑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극적 소고>나 조인숙 작가님의 <새벽, 호모마스쿠스>는 직접적으로 연관이 생겨요. 그래서 작가님들끼리 이야기를 나누시고 최종적으로 제가 받아서 확인을 하는 식으로 진행을 했습니다.
Q. <팬데믹 플레이>의 경험이 어떻게 남으셨는지 궁금해요. 외롭지 않기 위해 창작집단 독을 만드셨다고 하셨는데 함께 작업하는 과정에서 외로움이 해결될 수 있었을지 궁금합니다.
조정일 지금까지는 각각의 작품이 색깔도, 모양도 전부 다른 섬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관객들이 하나의 섬을 봤을 때 서로 연결 지어 생각할 수는 없었겠죠. 그런데 이번에는 그 섬에 다리를 놓아서 관객들이 마음껏 돌아다니면서 생각을 펼쳐 놓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저희가 생각하지 못한 것까지 보게 되니까 작품이 더욱 확장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작품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발견하는 재미도 있었고요.
고재귀 저는 이번 공연에서 이야기를 묶는 과정을 터널링이라고 부르는 게 어떠냐고 이야기를 했어요. 이전에 했던 작업들도 유기적으로 무언가를 공유하려는 생각은 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한 건물에 각자의 방을 만드는 형태였다면, 이번에는 공유 주방이나 공유 거실을 만드는 작업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이 형태가 분명 저희가 추구하는 지점에 닿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쉽지는 않을 게 분명해 보입니다.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마무리 지어 존재감을 주고 싶다는 바람이 있잖아요. 그런데 공유를 위해선 자신의 어떤 부분을 허물어야 하거든요. 그럴 때 작가의 욕구와 작품 전체를 완성시키려는 욕구가 충돌할 수밖에 없어요. 이 부분이 저희 안에서 어느 정도까지 양해가 될지는 노력을 하며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저희가 이 모임을 시작한 첫 번째 이유인 돈은 안 돼도 외롭지 말자는 취지에는 공유 거실과 주방이 부합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저희가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지금보다는 더 커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싶습니다.
조인숙 이번 공연을 하면서 저희도 저희가 하는 작업이 무엇일지, 어떤 식으로 이어져야 할지 고민을 했어요. 사실 공연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번 작업이 어떤 영향을 줄지 가늠이 안 되기도 해요. 그래도 지금까지 한 걸음이든 반걸음이든 계속 나아오긴 한 것 같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것 중에 자신의 것을 내어줘야 한다는 건 다들 느끼셨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내어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던 건 희곡집이 있어서예요. 희곡집에서 작가의 고유성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공연에서는 방도 내어주고, 사람도 내어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김현우 그래서 <기형도 플레이>와 <팬데믹 플레이>가 각자 다른 방향으로 최선을 다한 결과인 것 같아요. 이게 독의 큰 위기가 될 수도, 도약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여태까지 저희가 느슨하게 독립성을 추구하며 작업을 해왔는데 새로운 방향을 유지하려면 협업이 위주가 되어야 하잖아요. 느슨하게 연대해 왔기 때문에 20년 동안 올 수 있었거든요. 이번이 어떤 방식으로든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 같아요.
고재귀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을 적확하게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거리감을 줄여나가면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짐과 동시에 개별성이 살아 있는 이야기를 쓸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Q. <기형도 플레이>에서 기형도의 시로 일상적인 이야기를 가져오신 부분이 재밌었는데요. 어떤 연상 과정을 거치셨는지 궁금합니다.
조인숙 기형도의 시는 시가 가진 힘이 워낙 커서 이 시인과 시를 깨트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제일 컸어요. 그래서 조심스럽게 접근했던 것 같아요. 최대한 원형을 살리면서 갖고 올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고민했습니다.
김현우 저도 비슷한 고민을 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반대로 접근했습니다. 그때 비일상적이고 일그러진 판타지를 쓰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고, 작품을 쓸 당시 미투가 진행되고 있기도 했어요. 그런 것들이 조합되어서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가 나왔던 것 같아요. 희곡집에 작품을 실을 때까지만 해도 공연화 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공연이 결정되고 큰일 났다, 싶었어요. 달리 방법이 없으니 하긴 했죠.
조정일 저는 제 생각이 많이 반영됐던 것 같아요. 인력 감축이나 해고 통보 등의 사건을 보며 언젠가 이야기로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마침 <기형도 플레이> 작업을 했고, ‘기억할 만한 지나침’이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옮겨간 거죠. 기형도가 만든 시의 풍경이 제가 생각하고 있던 이야기의 느낌과 잘 맞아떨어졌던 것 같아요. 결국 제 희곡에는 제가 유심히 봤던 사건이나 사람들이 담기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어느 순간부터 희곡을 쓸 때 내가 사는 시대를 차곡차곡 기록한다는 생각으로 쓰고 있어요.
Q. 독의 작품들이 공통적으로 일상을 새롭게 인식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는데요. 이 주제가 독의 정체성과 어떻게 닿아 있다고 생각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김현우 저는 관객분들이 일상적이라고 하셨을 때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전혀 인지하지 못했거든요. 제가 느끼기에는 일상보다 동시대성이라는 말이 맞을 것 같아요. 저희는 동시대의 다양한 일들, 사건들을 찾아서 기록하고 극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지금 현실을 기록한다는 의미로 바라봐 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조정일 주제 때문일 것도 같은데요. 저희는 주제를 정할 때 지금 우리를 제일 강하게 자극하는 것,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거든요. 그래서 나온 작품들이기 때문에 일상에 가까울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고재귀 개인적으로는 ‘새롭게’라는 말이 오래 쳐다본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같은 자리에서 오래 쳐다보는 것도 ‘새롭게’라는 말을 끄집어낼 수 있는 한 방식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형태의 이야기 만드는 걸 선호하는 편입니다.
Q. 각자 작업하실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과 작업 방식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김현우 저는 형식적으로 차별화된 작업을 하고 싶은 것 같아요. 그래서 주제나 캐릭터적으로 새롭게 접근하는 방식을 택하곤 합니다.
고재귀 저희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연극뿐만 아니라 시나리오나 오페라, 창극, 무용극 같은 다른 글쓰기를 하고 있어요. 그래서 각자 개별적인 작업을 할 때와 독의 작업을 할 때 다른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독에서 오더가 떨어지면 일단 미룹니다. 앞에서 어떻게 하는지 보고 출발을 하는 편인 것 같아요. 너무 늦으면 민폐가 되기도 하지만 좋은 친구들이라 말없이 받아주어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네요.
조인숙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제 글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부분은 없는지 체크하는 습관이 있어요. 보통은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역사적인 배경을 다룰 때는 지켜야 하는 고증이 있잖아요. 당시에 쉽게 쓰던 단어를 현재의 공연에서는 써도 될지, 같은 고민을 종종 해요. 저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만 누군가는 그것을 보면서 불편할 수도 있잖아요.
고재귀 글 쓰는 사람들끼리 모여 있으니까 읽어줄 사람을 찾는 게 어렵지가 않아요. 그런데 그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이가 들수록 글을 읽어줄 사람을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읽어줄 사람이 없으면 스스로 선택하고 판단해야 하는데, 읽어줄 사람이 있는 덕에 상처될 만한 것 혹은 오해의 소지로 읽힐 수 있는 부분이 조금씩 걸러지는 것 같아요.
Q. 학교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김현우 저는 학교 다닐 때 집에 안 들어갔어요. 매일 술 먹고 극작실에서 잤거든요. 그래서 어느 날은 저희 어머니가 극작실로 전화하셔서 저를 찾았어요. 오랜만에 어머니와 통화한 기억이 있네요.
고재귀 저는 요즘 말로 ‘아싸’였어요. 그래서 특별히 에피소드가 있지는 않은 것 같아요. 대신 학교 공간이 주는 매력이 기억납니다. 지금은 현대식 건물이라 멋지지만 층별로 나뉜 느낌이잖아요. 그런데 그때는 3층 건물을 영상원, 전통원, 연극원 모두가 공유했기 때문에 오며 가며 사람들을 마주칠 수밖에 없었어요. 그 협소함이 주는 소중함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저희는 연출과와 과실을 같이 사용했기 때문에 지금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연출가분들과 어울릴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 시간들이 저희한테는 알게 모르게 도움도 되고, 써야겠다는 마음도 품게 해서 의자에 앉게 만드는 요인이 됐을 거라고 생각해요.
조정일 저는 책에서 뵙던 선생님들을 학교에서 뵐 수 있는 게 좋았어요. ‘초빙 극장실습’이라는 수업을 통해 원로 선생님들을 뵙고 작업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요. 전설을 만나는 것 같아 이론 수업보다 큰 에너지를 얻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Q. 인터뷰를 볼 학생 혹은 과거의 자신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김현우 제가 가장 좋았던 것은 과실에서 다양한 학생들과 활발하게 교류했던 거예요. 4년 동안 함께 작업하며 대화하고 술을 마셨던 시간들이 결국에는 너무 소중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결국 연극은 공동작업이기 때문에 동료를 만들고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시간들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학교를 외롭지 않게 다니셨으면 좋겠어요.
조정일 저는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내성적인 사람인데 우연히 연극학교에 들어와서 연기도 하고 춤도 추고, 다양한 걸 경험했어요. 그게 즐거웠던 것 같아요. 연극이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연극을 만나고, 연극을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학교에서 어떤 재미를 만난다면 그 속으로 더 끌려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고재귀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생각해요. 이제 빼도 박도 못하는 기성세대가 되었구나, 싶기도 하고 기성세대를 위로 쳐다봤던 시기가 떠오르기도 해요. 그때 올려다봤던 기성세대에게 느꼈던 부정적인 감각을 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들고요. 그래서 지금까지는 덜 ‘꼰대’스러워 보이기 위해 침묵을 택했던 편이에요. 그런데 요즘은 그것도 무책임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고는 합니다.
이 일을 하려면 행운이 좀 필요해요. 어쩔 수가 없어요. 그런데 운이라는 게 내가 원할 때 원하는 만큼, 원하는 방식으로 오지 않아요. 그러면 좀 버텨야 해요.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하고, 자신을 믿고 조금이라도 나아가는 방식을 모색해야 해요. 그런데 버티는 힘을 갖기 위해선 동료가 필요해요. 혼자는 너무 외롭고 지치거든요. 그래도 같이 비바람 앞에 설 친구 하나, 동료 하나가 있으면 조금 더 오래 견딜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학교에서 나와 같이 작업하고 같은 길을 가 줄 동료를 만나는 거, 그게 예술 학교의 가장 큰 장점이지 않을까 싶어요.
저희는 운이 좋았던 케이스라고 생각을 합니다만 지금 학교를 다니는 분들도 그 행운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행운이 필요 없을 만큼 자기 실력이 단단해지는 때가 오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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